성씨 유래

제목언양 김씨(彦陽金氏)2021-09-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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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김씨(彦陽金氏)의 유래


언양(彦陽)은 경상남도 동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때의 거화현(居火縣)인데 경덕왕(景德王 : 제 35대 왕, 재위기간 : 742 ∼ 765)이 헌양으로 고쳤으며, 고려 때 와서  언양(彦陽)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신라 왕족의 후예인 언양 김씨(彦陽金氏)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8세손 경순왕(敬順王)의 일곱째 아들 김  선(金  鐥)으로부터 세계(世系)가 이어진다.

 

[언양김씨신유보(彦陽金氏辛酉譜)]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고려 때 언양군(彦陽君)에 봉군되었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언양(彦陽)으로  하게 되었다고 힌다.

가문을 빛낸 대포적인 인물로는 시조 선(鐥)의  손자 정보(精寶)가 고려에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지냈고, 증손 경숙(鏡淑)은 대장군(大將軍 :  정 3 품 무관직 벼슬)을  역임하여 신호위 별장(神虎衛別將) 수(壽 : 경숙의 아들)와 함께 이름을 날렸으며, 수(壽)의 아들 언련(彦連)은 신호위 중랑장(神虎衛中郞將)을 지냈다.  한편 언양 김씨(彦陽金氏)가 자랑하는  취려(就礪)는 음보(蔭補 : 조상의 덕으로 벼슬에 오름)로 정위(正尉)에 임명되어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將軍)으로서 동북계(東北界)를 진압한 후,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1216년(고려 고종 3) 거란군의 침입을 물리치고, 1219년(고종 6) 국경 경비병 출신인 부장(部將) 다지(多知)의 반란을  평정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판호부사(判戶部事)에 올랐다.

 

이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태자 태사(太子太師)로 특진한 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상주국(上柱國)·상장군(上將軍)·판리부사(判吏部事)에 이르렀으며, 평소 강직하고 청백한 성품으로  군기를 엄정히 하고 부하를 아꼈으며, 전장에서는 기발한  계교로써 많은 공을 세웠다.  취려(就礪)의 아들 전(佺)도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상장군(上將軍)· 판리부사(判吏部事)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양감(良鑑 : 상장군으로 언양군에 봉군)과 변(첨의평리를 역임)이 유명했다.

한편 양감(良鑑)의 셋째 아들 문연(文衍)은 첨의중호(僉議中護)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라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고, 변의 아들 윤(倫)은 고려 충목왕(忠穆王 :  제 29대 왕, 재위기간 : 1344 ∼ 1348)  초에 찬성사(贊成事)를 거쳐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러 언양부원군(彦陽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경직(敬直)이 문하시중(門下侍中)·검교첨의찬성사(檢校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언양백(彦陽伯)에 봉군되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조에 와서는 선천 군수(宣川郡守)를 거쳐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내고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진 숙보(叔甫)의 아들  관(瓘)이 1451년(문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지내고, 세조(世祖)  때는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이등공신(敵愾二等功臣)으로 종부시정(宗簿寺正 : 왕실의 보첩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 3 품 벼슬)이 되었으며, 강원도와 황해도의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뒤 예종(睿宗) 초에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지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된 언침(彦琛)의 아들 천일(千鎰)은 임실 현감(任實縣監)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나주(羅州)에서 고경명(高敬命)·박광옥(朴光玉)·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조정(朝廷)으로부터 판결사(判決事)의 벼슬과 창의사(倡義使)의 호(號)를 받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왜군(倭軍)과의 전투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진주성(晋州城)을 사수(死守)하다가 적에게 성(城)을 함락당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자결하여 뒤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어 가문을 더욱 빛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광필(匡弼)의 아들 준(浚)이 선조(宣祖) 때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교동 현감(喬桐縣監)을 지냈으나,  광해군(光海君)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죽산 부사를 지내고 안주 목사(安州牧使) 겸 방어사(防禦使)가 되어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 안주성(安州城)이 함락되자 처자와 함께 자결하여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으며, 중만(重萬)은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都使)를 역임하여 병조 참판(兵曹參判) 석중(石重)·취련(取鍊),  군자감정(軍資監正) 도손(道遜), 중추부사(中樞府事) 덕순(德純)·창우(昌宇)·희채(禧采), 이조 참판(吏曹參判) 순봉(舜鳳), 공조 참의(工曹參議) 사호(士豪)·두열(斗烈)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행렬자)

22(甲갑) 23(九구) 24(昞병) 25(寧녕) 26(成성) 27(熙희) 28(康강) 29(宰재) 30(廷정) 31(揆규)
32(愚우) 33(元원) 34(會회) 35(殷은) 36(義의) 37(起기) 38(庸용) 39(新신) 40(奎규) 41(夏하)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언양 김씨(彦陽金氏)는 남한에 총 8,070가구, 33,47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매산리

     - 전북 정읍군 덕천면 달천리, 이평면 마항리
     - 충남 서천군 문산면 구동리
     - 전북 김제군 금산면 삼봉리, 봉남면 용호리
     - 충남 천원군 성거면 천흥리
     - 전남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 전북 남원군 보절면 괴정리

#언양김씨#彦陽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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