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유래

제목능성구씨(綾城具氏)2021-09-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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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선대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다. 구존유는 고려시대 벽상삼한삼중대광 검교상장군에 이르렀다. 훗날 구존유의 장인이 된 주잠(신안주씨 시조)은 송나라 한림학사였다. 구존유는 송나라가 몽골에 패망하자 1224년(고려 고종 11년) 주잠과 함께 망명해 온다.

 주잠은 이름도 적덕(積德)으로 고치고 전남 화순군 능성에 숨어 살면서 2남 1녀를 두었다. 구존유는 주잠의 딸과 결혼한 뒤 능성에서 함께 살았다. 그래서 본관을 능성이라 했다. 한편 시조 묘는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다.

 능성구씨는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한 7세조 때 9개 파로 갈라진다. 구성량. 구성로 등이 이성계의 집권에 동조하여 조선 개국 후에까지 세력을 계속 확장한다.

 구성로의 손자 구치관이 크게 출세하면서 능성구씨는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시조의 9세조인 구치관은 구성로의 손자이며 공주목사를 지낸 구양의 아들이다.

 구치관은 계유정난 이후 좌승지에 오르고 세조 즉위 후 능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후에 영의정에 오른다. 건주위 여진을 칠 때 진서대장군으로 출전하였다. 예종 때 원상(院相)으로 호조판서를 겸하고 성종 즉위 후 다시 이조판서를 겸임했다.

 구치홍은 구치관의 동생으로 무과에 올라 해주목사, 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했다. 구치홍의 아들 구수영은 세종의 동생인 영응대군의 사위가 되어 선략장군이 되었다. 중종반정 직후 판돈령부사로서 능천군에 봉해졌다.

 2000년 현재 120,503명이 있다.

주요파는

각파별(各派別) 분포 사항(分布 事項)을 보면,


- 구현좌(具賢佐) 판사파(判事派)로서 서산과 해미등지에 세거(世居)한다.

- 구현로(具賢老) 전서파(典書派)로서 무후(無后)하다.

- 구영량(具英良) 시랑중파(侍郞中派)로 화순(和順)과 보은(報恩)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 홍(具 鴻) 좌정승파(左政丞派)로 성주(星州)와 대구(大邱) · 안동(安東)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성량(具成亮) 판안동파(判安東派)로서 당진(唐津) 및 강화(江華)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성로(具成老) 도원수파(都元帥派)로서 광주(廣州)와 여주(驪州)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현보(具賢輔) 낭장파(郞將派)로 서천(舒川) 및 비인(庇仁)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현기(具賢器) 감무파(監務派)로 당진(唐津)과 면천(沔川)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성미(具成美) 참판파(參判派)로 익산(益山) 등지(等地)에 세거(世居)한다.

- 구원립(具爰立) 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로 완주(完州)와 고산(高山) 등지(等地)에 살고 있다.


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 등 아홉 파로 갈리는데 그중에서 좌승공파, 판안동파, 도원수파의 후손들이 조선조에 와서 가장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여 크게 번창하였으므로 오늘날 구씨 전체 인구의 주종을 이룬다.

 가문(家門)의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로는 판사파의 파조인 현좌가 고려에서 사재감 판사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인문은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집현전 교리를 지내면서 문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눈뜬 소경으로 행세하며 낙향하여 두문불출 하였으므로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 되었다.

영랑은 시랑을 역임했고, 희는 학자로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모아 진양강에서 왜군(倭軍)과 싸우다가 전사(戰死)했다.좌정승파의 파조인 홍은 고려(高麗)의 충신(忠臣)으로 우왕(禑王) 때 밀직부사를 거쳐 우정승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한편 익수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미리 알고 거짓으로 미친체하며 벼슬을 버리고 은거 하였는데 세조가 즉위한 후 공조참판에 임명했으나 끝까지 불취했고, 봉령은 명종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조 때 대사헌을 거쳐 부제학을 지냈으며, 당시 격렬한 동서 당쟁 속에서 중립을 지켰다.

판안동파의 인물로는 성량리 세종 때 판안동 대도호부사에 올랐으며 문신은 성종 때 부총관을 역임하고 좌리사등공신으로 능원군에 봉해졌다.

중종 때 구례현감을 지낸 수복은 진사 이의 아들로 그의 동생 수담이 다사간, 대사성 등을 지내고 대사헌에 올랐으며, 수복의 아들 변은 1568년(선조 1) 이조좌랑으로 춘추관의 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도원수파 성로의 손자 치관은 목사 양의 아들로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등을 거쳐 세조 때 좌익삼등공신이 되어 이조참판에 올라 능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뒤에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중추부사 치홍의 아들 수영은 중종 때 판돈령부사로서 정국이등공신에 녹훈되어 능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사안은 중종의 셋째 딸 효순공주와 혼인하여 능성위에 봉해지고 명종 때 위사원종일등공신이 되어 능원군에 진봉되었다.

이조판서 사맹은 선조 때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청렴(淸廉)결백(潔白) 하기로 이름이 났다.시문에 능했고 딸이 인헌왕후가 되었으므로 뒤에 능안부원군에 추봉되었다.대사성을 지내고 능해군에 봉해진 성과 병조판서로 영의정에 추증된 굉이 유명했고, 인후는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러 가문을 빛냈다.

그밖에 인물로는 공조판서를 지내고 능풍부원군에 봉해져 영의정에 추증된 인기와 어영대장을 지낸 문치가 지돈령부사 일, 예조판서 윤옥, 윤명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고, 한성부판윤을 지낸 택규는 좌찬성에 추증되었다.근대에 와서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춘선과 영필, 정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진회 규탄에 전력하다가 순절(殉節)한 연영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구(具) 씨는  193080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41 위이며  능성 구(具) 씨는  108209 명으로 본관별 전체 순위는  90 위이고 성씨내 본관별 순위는  1 위이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능성 구(具) 씨는 전체 가구수가 37,706 가구로 본관의 인구는 120,503 명으로 본관별 전체 순위는 73 위이며, 본관별 성씨 내의 순위는 1 위로 나타났다.

능성구씨의 족보는 2002년에 8수보를 하였으며 아직 인터넷 대동보는 구축을 하지 못하였으나 일부 파에서 인터넷 파보를 구축하고 있다.
도원수파의 직장공파(http://nkj.hometer.kr/)와 판안동파(http://nskoo.hometer.kr/)에서 구축을 하고 있으며 수단신청을 받고 있다.

#능성구씨#綾城具氏#직장공파#판안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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