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역사적 배경: 청량당의 핵심적인 유래는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동남쪽 축성 책임자였던 이회(李晦, 1567-1625) 장군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회는 성을 튼튼하게 쌓기 위해 공사 기한을 넘겼고, 이로 인해 공사비를 탕진하고 게을리했다는 누명을 썼습니다. 결국 수어장대 앞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는데, 그의 목이 떨어진 자리에 매 한 마리가 날아와 슬피 울다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고 부릅니다. 이회 장군의 부인 송씨는 남편이 축성비 부족으로 고심하는 것을 보고 직접 기부금을 모으러 다녔습니다. 많은 양의 기부금을 싣고 돌아오던 중 삼전도 나루터에서 남편이 참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싣고 온 쌀을 모두 강물에 던지고 자신도 한강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고 합니다. 일부 기록에는 '유씨 부인'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이들 역시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절망하여 함께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후 청량당 근처에서 여인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두 여인의 초상화를 모신 후에야 통곡 소리가 사라졌다는 전설과도 연결됩니다. 나중에 다시 조사를 해보니 이회가 쌓은 성벽은 튼튼했으나, 다른 구간은 무너지는 등 그의 무죄가 밝혀졌습니다. 이에 나라에서는 이회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수어장대 옆에 사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청량당입니다. 청량당에는 이회 장군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첩, 그리고 남한산성 축성에 공을 세운 ‘벽암대사(碧巖大師)’도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청량당은 단순한 사당을 넘어 마을의 신을 모시는 신당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회 장군은 남한산성 도당굿에서 주신(主神)으로 모셔지며, 그의 한을 풀어주고자 도당굿이 거행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청량당은 6.25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입니다. 사당 내부에는 위패가 아닌 이회장군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1624년(인조2) 수어사 이서李曙(1580~1637)와 함께 남한산성을 쌓은 이회李晦(1567~1625), 송씨부인·나씨부인·벽암대사·홍수장군·백마장군·오방신장·매바위·남한산성군웅·별상장군 등 10명의 무속신을 모시고 있다. 청량당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민속경관의 주요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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