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청사 역사 및 역할 창건: 조선 인조 3년(1625년) 선승 각성(覺性)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승영사찰의 기능: 국청사는 일반 사찰 기능 외에도 승군(승려 군대)이 주둔하며 남한산성의 축성과 수비, 그리고 군사 훈련을 하던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무기고와 화약고 같은 군사 시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병자호란과의 관련: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했을 때, 국청사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승군(주로 강원도 승군)들이 활동하고 백성들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던 곳이었습니다. 쇠퇴 및 복원: 남한산성 내 승영사찰들은 1905년 일본이 의병의 무기창고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국청사도 이 과정에서 소실되었습니다. 현재의 국청사는 1968년에 이전 중건된 것입니다. 월영루(月暎樓) 관련: 1847년 편찬된 지리지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국청사는 남한산성 서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누각과 연못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최근 발굴 조사에서 이 누각인 '월영루'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부재(나무 건축재)가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 목부재는 남한산성 내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건축부재가 출토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소장 유물: 성삼문의 친필로 전해지는 병풍 1점과 송시열의 친필 책자 3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불전: 사찰 경내에 천 개의 부처님을 모신 천불전이 있습니다. 전설: 절 근처에는 '국청사정(國淸寺井)'이라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금닭이 나와 홰를 치며 울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국청사 터 발굴 현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