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남한산성 남문2025-07-13 11:01
작성자 Level 10

남한산성의 4대문 중 남문은 지화문(至和門)이라고도 불리며,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입니다.

초기 역사: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한산주에 주장성(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이 그 터로 추정됩니다.

고려 시대 기록은 없으나, 조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일장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주요 개축:

조선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당시 인조는 청나라의 침략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남문을 통해 입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남문은 인조의 고난과 관련된 상징적인 문이기도 합니다.

남문은 남한산성의 서남쪽 곡저부(골짜기의 바닥 부분)에 위치하며, 왕이 다니는 문답게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습니다.

정조 3년(1779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남문도 함께 개축되었으며, 이때 지화문(至和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입니다.

근현대:

현재의 문루(門樓)는 1976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당시 홍예기석(虹霓基石)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새로 보충하여 복원하고 현판을 걸었습니다. 홍예문은 높이 475cm, 너비 335cm, 길이 860cm이며, 17개의 홍예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문으로 차량이 통행하였으나, 이후 산성터널 개통과 함께 인도로 전환되어 현재는 사람만 통행합니다.

남문 밖에는 성남시 보호수로 지정된 약 4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남한산성 성곽 준공 당시 성곽 사면의 토양 유실 방지 및 차폐 목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한산성 남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통로였으며, 현재에도 많은 사람이 남한산성을 찾는 주요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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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남문# 지화문#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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