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수어장대를 임금이 지키는 곳이라고하는데 임금이 지키는 곳이아니고 임금을 지키는 5군영 중 남한산성에 주둔하였던 수어청의 수장인 수어사가 지키는 곳입니다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웅장하게 자리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군사 지휘 시설이자 역사적 기념물입니다. 2021년 12월 2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153호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수어장대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병자호란의 통한과 북벌의 염원이 담긴 조선 왕조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수어장대는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할 당시 함께 건립된 4개의 장대(동, 서, 남, 북)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장대입니다. 건립 당시에는 서장대(西將臺)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1637) 당시 인조가 직접 올라 성의 방어 상황을 살피고 군사들을 지휘했던 아픔의 현장입니다. 추운 겨울, 청나라 군에 포위되어 항전을 이어가던 조선의 비통한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죠. 이 호란 때는 수어장대가 아니고 서장대로 단층으로 전투를 지휘하였던 것입니다 서장대는 조선의 항복으로 청군에 의해 완파되어 터만 남았던 것을 5군영의 수어청이 남한산성으로 이전하면서 수어청의 장인 수어사는 숙종 때 신완장군이 초대 수어사로 부임한이래 수어청이 해산될 때까지 23명의 수어사가 부임을 하였다 현재의 '수어장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영조 27년(1751년)입니다. 당시 유수(留守)였던 이기진이 기존의 단층 누각을 현재와 같은 2층 누각으로 증축하면서, 내부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을, 외부에는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걸었습니다. '무망루'라는 이름에는 병자호란의 치욕과 효종이 염원했던 북벌을 이루지 못한 한을 잊지 말자는 비장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 1836년(헌종 2년)에 현재의 건물이 다시 개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수어장대는 역대 조선 국왕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합니다. 인조를 비롯해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 수많은 왕들이 남한산성을 찾아 이곳에 올라 옛 역사를 되새겼습니다. 이는 수어장대가 단순한 지휘소를 넘어 국가적 위기와 극복의 상징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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