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대지에 뿌려진 조선 백성들의 눈물 1637년 2월 3일,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이 있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경기도의 한 평화로운 마을에 청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청군 장교는 칼을 빼들고 마을 사람들에게 고함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와라!" 주민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채 집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장교는 서슬 퍼런 목소리로 명령했습니다.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너희 중 일부를 심양으로 데려갈 것이다!" 한 백성이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저희를... 왜 데려가십니까?" 장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으니, 너희는 우리의 전리품이다. 포로를 데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군은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대상을 골랐습니다. 주로 젊고 건강해 보이는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무릎 꿇고 애원했습니다. "제발... 제 딸만은 데려가지 마세요..." 청군은 그녀를 거칠게 밀쳤습니다. "비켜라!" 15살의 어린 딸은 "어머니!" 하고 울부짖으며 끌려갔습니다. 어머니는 쓰러진 채 딸을 쫓으려 했지만, 청군이 휘두른 채찍에 맞아 다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 남편은 아내를 놓아달라며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청군은 그에게 창을 휘둘렀고, 남편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내는 "여보!"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남편의 시신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 역시 무참히 끌려갔습니다. 그날, 이 작은 마을에서만 50명의 백성이 끌려갔습니다. 남자 20명 (15세~40세) 여자 20명 (15세~35세) 아이 10명 (10세~15세) 같은 날, 조선 팔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모든 지역에서 이처럼 참혹한 포로 징발이 일어났습니다. 청군은 마을마다 들이닥쳐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갔습니다. 1637년 2월 15일, 한양 근처의 넓은 벌판에는 각지에서 끌려온 포로들이 집결했습니다. 그 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한 곳에는 1,000명, 다른 곳에는 2,000명, 또 다른 곳에는 3,000명...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은 5,000명, 10,000명, 마침내 20,000명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한 포로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나 많이... 이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인가..." 청군 장교가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출발한다! 심양으로 간다! 뒤처지면 죽는다!" 긴 포로 행렬은 그렇게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끌려간 포로들의 규모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령별: 남자 (15세~50세): 약 200,000명 여자 (15세~40세): 약 180,000명 아이 (10세~15세): 약 80,000명 노인 (50세 이상): 약 40,000명 신분별: 양민: 약 400,000명 (80%) 천민: 약 80,000명 (16%) 양반: 약 20,000명 (4%) 청군은 젊고 건강한 이들을 주로 데려갔습니다. 남자는 노동력으로, 여자는 노동력과 혼인 대상으로, 아이들은 청나라 백성으로 양육하기 위함이었습니다. |